가볼만한곳] 미술동네 삼청동 … 도심 숨통 틔우는 문화허파

2007. 1. 17. 21:33카테고리 없음


 삼청(三淸)이란 도교에서 신선이 산다는 세 궁궐, 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을 말한다.

 서울에도 삼청이 있다. 물 맑고, 공기 좋고, 도둑이 없어 청정한 골.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이다.

한국 삼청동에는 신선 대신 문화가 살아 꿈틀거린다.

삼청동이 요즈음 강북 지역의 새로운 문화 허파로 떠올랐다. 맛집 거리로 소문났던 삼청동이 신흥 갤러리 타운으로 주목받고 있다.

강북의 인사동.사간동.평창동, 강남의 청담동.신사동에 이어 제6의 미술동네로 쑥쑥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 화랑만 아니다. 개성 넘치는 옷집과 공예점이 화랑에 어깨를 맞대고 오밀조밀 들어서고 있다.

대학로가 젊은이의 놀이터라면 삼청동은 장년층의 문화사랑방이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헤매던 강북 시민의 발길을 끌어들인 삼청동, 거기를 가보자.

한여름 같은 더위가 아스팔트를 달구던 10일 오후, 온도계는 24도를 넘었다는데 서울 삼청동에는 사람이 바글거린다. 좁고 턱 높은 계단을 올라 '남궁환 전'이 열리고 있는 김현주갤러리에 들어서니 발 디딜 틈이 없다.

삼청동 특유의 골목길 주택을 고쳐 화랑으로 만든 전시 공간은 작고 앙증맞다.

이웃집 좀 넓은 마루방에 들어온 느낌이다. 다정함은 삼청동 화랑들의 특징이다. 대부분 낡은 집을 고쳐 화랑 공간으로 바꿨기에 사람이 살던 훈기가 남아있다.

# 작은 것이 아름답다

이 골목 저 골목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삼청동의 화랑과 옷집과 공예점을 돌다 보면 옛날 골목길이 떠오른다. 김현주갤러리처럼 대부분 골목 안 고만고만한 집을 개조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대형 빌딩이 하늘을 가리는 서울에서 이제 골목은 매력있는 추억의 상품이다.

삼청동에 와서 골목 문화를 만나는 장년층은 저절로 "좋다"를 연발한다.

단순한 복고 취향이 아니라 현재 살아숨쉬며 '진화하는 복고'여서다.

공공미술전문가인 박삼철('아트 컨설팅 서울' 소장)씨는 삼청동의 최근 변화를 "인위적 도시개발이 아닌 자발적 개.보수여서 의미있다"고 평가했다.

 개개인이 자기 취향, 업종에 맞게 개성 넘치는 공간으로 새 단장하는 흐름이 삼청동의 과거와 잘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큰 것이 좋다'에 쏠려 있는 강남과 달리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실천하는 삼청동 정서가 강북 주민을 끌어당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하나의 삼청동 취향은 다방 문화다. 화랑이 다방 같고, 다방이 화랑 구실을 한다.

이름을 아예 '갤러리 카페 빨강숲'이라 붙인 정연우씨는 몇 년 전 인사동에서 화랑을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카페와 화랑을 접붙인 공간을 만들었다.

 차 마시며 바로 눈앞에서 그림 구경을 한다. 손철주 도서출판 학고재 주간은 "전시공간이 드문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다방에서 개인전을 여는 작가가 많았다"고 했다. 삼청동 화랑가를 거닐다 보면 옛날 다방 전시가 떠오른다는 그는 "숨죽이고 기죽어 들어가야 하는 대형 화랑보다는 살갑고 부드러운 다방형 화랑이 일반인 정서에 맞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 목욕탕이 화랑으로 변신

삼청동이 강북의 문화 허파로 떠오르고 있다. 뼈대 있는 전통의 동네 북촌(北村)과 어우러져 '강북에서 놀러갈 만한 곳'이란 입소문이 돌고 있다.

이웃한 경복궁의 고풍스런 멋, 좁고 꼬불꼬불한 길의 살가움, 예술의 정원에 들어선 듯한 자연스런 입지. 삼청동이 풍기는 멋이 사람을 끌어당긴다.

소비자만 이 동네에 반한 건 아니다. 생산자도 매혹됐다. 충남 천안에서 아라리오 갤러리를 운영하는 김창일씨는 해묵은 동네 목욕탕을 개.보수해 '아라리오 서울'을 만들었다.

 "부인이 어린 시절 다니던 목욕탕이어서 감회가 깊다"는 그의 한마디가 또 화제가 됐다.

한옥 외관을 그대로 살린 학고재, 옛 집 뼈대가 드러난 pkm 갤러리 등 개성 넘치는 화랑이 줄을 섰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그만 둔 정준모씨는 며칠 전 pkm 갤러리 위쪽에 전시공간인 '대안공간 역(易)'을 냈다. '한국미술문화정책연구원'을 겸할 사무실을 이 골목에 구한 까닭은 "번잡스럽지 않은 고즈넉함"이란다.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가 젊은 기획자들과 꾸린 공부방 겸 사무실 'samuso'도 몇 집 아래에 있다.

박삼철 소장은 "삼청동 화랑 거리가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살리면서 스스로 발전해가는 문화지대의 한 본보기로 여일(如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